해를 품은 달 만신창이 된 중전, 비난마저 부셔버린 죽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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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품은 달 만신창이 된 중전, 비난마저 부셔버린 죽음

구름위 란다해피 2012.03.16 09:00

"해를 품은 달"이 훤과 연우만 남긴 채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 나서야 끝났습니다. 어쩌면 이 모든 사람의 비극을 이끌어 낸 것은 겉으로는 중전의 아비이자 영의정인 윤대형일지 모르지만, 그 가운데 허씨 처녀인 연우가 존재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중전인 보경은 그런 연우와 동시대에 태어나 사랑한 번 받지 못하고 홀로 쓸쓸히 세상을 떠나야 했던 비운의 여인이었고요.

어린 시절 연우와 보경은 종 설의 문제로 마주친 이후로 얽히고설켜 언제나 서로의 운명을 극과 극으로 몰고 가는 운명적 대결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 두 개의 달이 존재할 수 없으나 이미 존재해 버린 두 달은 또 다른 태양이 등장하며 비극적인 소용돌이로 빠지고 말았지요. 연우와 훤은 사랑했으나 그 사랑이 이루어지기에 너무나 힘들었고 양명은 연우를 사랑했으나 기회를 얻지 못했으며 보경은 기회를 얻었으나 사랑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해를 품은 달"에서 가장 큰 희생을 당한 여인이라 손을 꼽는다면 당연히 연우이겠지요. 세자비에 올라 단 하루 만에 죽음의 길로 들어서야 했고 흑주술로 인해 기억을 잃어 버린 채 월이라는 이름으로 또 한세상을 살아가야 했으니까요. 거기에 아버지인 홍문관 대제학이 딸의 죽음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까지 끊었던 일은 연우의 가슴에 한이 맺힐 정도로 참담한 결과 중의 또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통 속에서도 모든 걸 하나씩 되찾아가며 사랑까지 얻어가는 연우의 삶보다 끝에서 한 여인으로서 모든 삶을 끝마쳐야 하는 중전의 죽음은 더할 나이 없는 가장 슬프고도 허망한 비극이었습니다. 욕심 많은 아비를 잘 못 만나 가슴에 칼을 품어야 했고 시기와 질투에 연우를 미워했지만, 너무나도 큰 벽에 가로막혀 엄두조차 못 냈던 비련의 여주인공 중전은 끝내 자신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선택의 강요를 받고 말았으니까요.

 

다시 과거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연우가 흑주술에 의해 죽고 나서도 훤의 마음을 얻지 못했던 지난 8년은 어쩌면 중전에게는 행복한 시절이 아닌 더할 나이 없는 또 하나의 고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비록 자신이 세자비였던 연우를 죽이는데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그걸 알고도 방관했기에 스스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던 중전은 죽었다 생각했던 연우에게 마저 시기와 질투를 해야 하는 비참한 현실이었으니까요.

 

8년 만에 찾아온 훤과의 합방 처음 날 중전의 마음은 설레고 기대되었습니다. 그토록 자신이 사랑하던 훤을 품을 수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훤은 그런 중전의 마음도 모른채 왕자를 잉태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중전도 겉으로는 그러한 바램이 강했지만 실은 그게 아니었지요. 지아비를 사랑한 한 여인이자 아내로서의 마음이 더 간절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비와 도무녀 권씨의 계략으로 흑주술에 훤이 쓰러져 합방까지 망쳐 버렸던 중전은 다시 살아 돌아온 연우으로 인해 끝없는 고통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궁의 은월각을 지날 때 들려오던 허씨 처녀의 울음소리는 그녀를 공포에 몰아넣으며 괴롭혔고 거울 볼 때도 방의 빈 곳을 볼 때도 나타나는 허씨 처녀의 모습은 중전을 점점 폐인으로 만들어 갔지요.

그렇게 중전은 삶이 망가져 가며 점점 여위어 가고 공포에 시달리다 손까지 다치고 나서야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는 훤의 품에서 엉엉 울어버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쉽게 변한다고 해도 동정과 사랑은 엄연히 달랐지요. 훤도 중전이 가엾다는 것은 알았지만, 사랑하지 않았기에 그 슬픔을 알고도 감싸줄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인 윤대형이 궁궐에 친척의 딸이라며 데려와 궁궐을 구경시켜주는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중전은 은월각의 울음소리가 아닌 사람에게서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아버지에서 말이지요. 중전은 아버지가 자신을 버린다는 것을 눈치채고 더 초조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어느덧 은월각 여인의 울음소리가 그쳤지만, 마음은 더욱더 불안하기만 했지요.
하지만 중전은 아버지의 악행을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훤을 찾아가 그 모든 것을 밝히고 그를 구하려 했지만, 곁에서 웃고 있는 연우의 모습을 보고 이내 마음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독한 마음 품고 성수청의 임시 도무녀였던 권씨를 불러 연우를 죽이기 위해 흑주술을 거는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고 말지요. 지금까지 자신이 직접 악행을 저지른 적은 없었던 중전이었는데 마지막 벼랑 끝에서 밀어 내버린 훤의 마음에 이미 중전은 이성을 잃고 말았던 것입니다. 허나 하늘은 중전의 편이 아니었고 성수청 도무녀 장씨에 의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며칠 후 아버지가 양명과 반란을 일으키던 그날 중전은 모든 걸 결심하게 되고 말지요. 사랑했던 사람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도 자신을 모두 버렸기에 이 세상 미련이 없었던 중전은 한 손에 흰 천을 들고 궁궐을 쓸쓸히 거닐며 마지막 남은 인생의 발걸음을 내딛고 맙니다. 그리고 중전은 끝으로 한 맺힌 말을 남기게 되는데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한 여인의 절규와도 같았습니다.

"전하, 아버지 기어이 피를 보고자 하십니까? 두 분 중 누가 승자가 될지 알 수 없으나 제가 폐비가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겠지요. 전하를 처음 뵌 그날부터 신첩이 원하는 건 단 하나 전하의 성심뿐이었습니다. 하여 신첩 마지막까지 중전으로서 전하의 여인으로서 죽을 것이옵니다."

정말 악하여도 가여웠던 중전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눕혀 있는 순간에도 눈을 감지 못했던 중전은 훤의 손길에 스치고 나서야 편안히 눈을 감았고 창백한 얼굴에서는 더는 환한 웃음을 볼 수가 없었지요. 그러나 끝까지 훤은 그런 중전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월이의 품에 안겨서야 중전의 안타까운 죽음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중전을 위한 눈물인지 양명을 비롯해 자신의 곁에 있던 모든 이들이 죽음으로 떠나 버린 결과에 대한 비참함의 눈물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요.

 

중전은 사실 악녀가 아니었습니다. 악녀라면 더할 나위 없이 연우를 괴롭히고 모질게 대했어야 했죠. 그러나 중전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늘 상황에 끌려갔고 아버지에게 이용만 당하는 비련 한 여인일 뿐이었지요. 단지 자신 사랑한 훤의 마음을 얻고자 한 것이 이 모든 비극을 만들어 내고 말았으니까요. 그래서 더욱더 중전의 죽음이 슬프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가여웠던 게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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